INTERVIEW

현실과 환상,

그 사이를 표현한다면

tacet artist: Kim Yeonhong 김연홍

안녕하세요 작가님, 짧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김연홍입니다. 제 작업은 웹에서 현실의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익명의 공간을 수집하고, 익명의 공간이 실제 공간과 같은 위치에 놓이는 지점에 관심을 두며 진행되고 있어요. 이러한 공간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가 경험으로 체득한 감각을 더해 가상의 공간 속에 펼쳐지는 계절을 캔버스 화면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그 공간 안에서 물결이나 바람과 같은 운동성과 시간성을 다양한 색채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법으로 담아내고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익명의 장소가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람객이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회화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물감이 지닌 색채의 그라데이션과 색감이 서로 어우러지는 순간에 깊은 매력을 느낍니다. 어쩌면 색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색이 스며들고 퍼지는 찰나의 순간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변화의 순간들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각들을 캔버스 위에 담아내는 일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색채의 움직임과 변화 속에서 제스처와 흔적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회화 작업은 저에게 강렬한 매력을 주며, 그로 인해 회화 작업에 깊이 몰두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시는 작업이 진행되기 전까지,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작업 초기에는 익명성이나 모호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아우라에 깊은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팬붓(붓 모양이 부채처럼 퍼져 있는 붓)을 사용해 경계를 뚜렷이 그리지 않고, 흐릿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천을 구입해 흐릿한 느낌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어요. 이전에는 팬붓을 사용해 경계를 흐리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을 반복했지만, 천에 작업할 경우 물감이 한 번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서 제 작업 방식과 훨씬 잘 맞았어요. 특히 물감이 천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경계가 흐려지는 효과를 보며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작업 한 점을 완성하시기 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캔버스 천 위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법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기법은 물감이 천에 스며드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하기 전 준비 과정이 특히 중요합니다.


먼저 파레트에 짜둔 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 색을 캔버스 위에 어떻게 배치할지 신중히 계획합니다. 이후 작업을 시작하면, 물감이 마르기 전에 경계를 흐리기 위해 빠르게 진행해야 해요.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작업 중에는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림을 시작하면 쉬지 않고 단번에 완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감이 천에 자연스럽게 퍼지는 순간마다 예상치 못한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저는 이러한 우연성이 화면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최근하신 작업중에 소개해주실 작업이 있으신가요?


‘물결 위에 남겨진 바람’은 물결 위에 나타나는 전면적인 모습을 담아낸 작업이에요. 좌우로 흔들리는 물결 위를 잘잘하면서도 예리하게 스쳐 지나간 바람의 움직임을 담고자 한 작업입니다. 


녹색 풀과 분홍색, 연노란빛 꽃들은 물결 위에 비친 그림자인지, 아니면 실제로 놓여 있는지 모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물결 위에 남겨진 바람, 2024, Acrylic on canvas, 72.7 x 60.6cm ©Yeonhong Kim
물결 위에 남겨진 바람, 2024, Acrylic on canvas, 72.7 x 60.6cm ©Yeonhong Kim

작가님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전시는 무엇인가요?


2024년 상업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Tail on Tail>이 저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전시에요. 전시 제목의 ‘Tail(꼬리)’은 제가 주로 사용하는 긴 붓의 터치가 남기는 흔적과 연속적인 움직임을 상징하고, 동물적인 생동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흔적들은 쌓이고 이어지며, 마치 한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작품들은 가상의 계절과 익명의 해변가를 주제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한 작업입니다. 스며드는 색채와 겹쳐지는 레이어를 통해 물결과 바람과 같은 운동성, 시간성을 표현했어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동감 있는 감각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전시 포스터, 서문까지 제가 구상한 모든 요소를 담을 수 있었던 전시로, 제 작업 세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확장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뜻깊었던 전시입니다.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상업화랑 개인전 , 2024 ©Yeonhong Kim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가 있나요?


제 작업에서는 반복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 시간성과 운동성, 그리고 감각적 경험이라는 주제가 나타납니다. 저는 익명의 가상 공간과 개인적인 경험을 결합해 현실과 상상이 모호하게 교차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또한 물결, 바람, 계절의 변화, 해변, 나뭇잎 같은 자연적 요소가 자주 등장하며, 긴 붓 터치와 스며드는 색채를 통해 물결의 흔적, 바람의 스침, 계절의 흐름처럼 순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려 합니다.


더불어, 흐릿한 경계와 우연성을 활용한 표현 기법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 관객이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작가님의 작업을 관람할 예정인데요, 작가님만의 추상 작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솔직히 저도 제 작업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상화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요. 그래서 관객분들에게도 “보이는 대로 보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까 걱정되기도 해요. 하지만 제 작업의 본질은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는, 관객이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며 각자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직관적인 제목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제목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작은 힌트가 되기를 바랍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며 “왜 이런 붓터치를 남겼을까?”, “이 색감은 어떤 감각을 표현하려는 걸까?”, “내가 작가였다면 이 풍경을 어떤 터치와 색감으로 표현했을까?” 같은 편안한 질문들을 떠올리고, 그 질문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 작업이 추상화된 건 제가 당시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일 거예요. 그래서 관객분들께서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각자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열린 결말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제 그림은 열린 해석을 남겨두곤 해요. 마치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과거의 풍경이나 기억이 떠오르듯, 제 작품도 자연스럽게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님이 평소에 작업을 하시면서 영감을 받는 것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한때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특히, 현실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들이 제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죠. 예를 들어, <잠입자>, <사랑을 카피하다>, <코멧>, <미래는 고양이처럼> 같은 영화들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런 영화들처럼 현실과 상상이 얇게 중첩되는 순간들과 그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제 작업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어요. 이러한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모호함과 신비로움은 제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그리고 싶다는 영감을 자주 불러일으킵니다. 제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상상의 교차점에 대한 탐구는 이런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색감에 대한 영감은 정말 다양한 일상에서 얻습니다. 사용하던 노트나 포스트잇,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낡은 벽, 요구르트 뚜껑, 디자인 포스터, 노을이 물든 하늘 등 사소한 것들이 모두 제 작업의 중요한 참고가 됩니다.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나요? 재료를 사용하시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생천(염색이나 가공 처리가 전혀 되지 않은 천)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며, 스며드는 기법을 활용하기 때문에 물을 굉장히 많이 사용합니다. 생천은 물감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며,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경계를 부드럽고 흐릿하게 만드는 표현이 가능해 작업에 적합한 재료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긴 획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부드럽고 긴 붓모를 가진 붓이나 큰 빽붓(넓고 평평한 모양의 큰 붓)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붓들은 넓은 면적을 빠르게 덮거나 유기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작업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제가 작업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결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이는 작업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물감이 천 위에서 스며들고 흐르며 만들어내는 우연의 흔적들은 마치 물결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리듬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물의 흐름과 움직임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운동성과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중요한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실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을까요?


작업실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물감과 도구의 정리입니다. 작업 중에는 건조 시간이 빠른 아크릴 물감이 마르기 전에 필요한 색을 바로 찾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물감을 색상별로 정리해 작업대에 배치해 두고 있어요.

작업 도중 물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늘 즉각적으로 색을 고르고 조합할 수 있도록 작업실을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나 도구가 있으실까요?


펭귄 담요와 펭귄 컵입니다. 펭귄의 묘하게 사실적인 모습이 그려진 담요와 컵이 재미있습니다.. 지인들이 작업실에 올 때마다 담요를 보며 “이걸 왜 샀냐?”고 물어보는데, 그 질문을 받는 것이 웃기고 재미있어요. 사실 이 담요와 컵을 산 이유는 호주 여행 중 경험했던 펭귄 퍼레이드를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느꼈던 경이로운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소품들입니다.

주로 어떤 환경에서 어느정도의 시간동안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합니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스며드는 기법의 특성상, 작업을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 어려워 한 번 몰입하면 긴 시간 동안 집중하게 돼요.

평균적으로 하루 5~8시간 정도 작업을 하지만, 작업의 흐름에 따라 작업 시간이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가장 나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모아 작업하며, 진정성 있게 표현되기 바라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목소리는 무엇일지 늘 고민하며 그 고유함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전시를 준비합니다.

작업활동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작업 활동 이외의 시간에는 전시를 관람하거나 작업실 동료와 미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요. 정말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종종 이런 대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작업 소재를 얻기도 하지만, 가끔은 '미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한숨 섞인 고민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미술이 제일 재미있고, 그런 고민조차도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어떤 주제를 탐구하고 싶으신가요?


앞으로는 불가사의한 것들과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있는 모호한 공간이나 개념을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어딘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요소들을 다루며,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과의 연결점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자 합니다. 곧 다가올 9월 개인전에 이러한 주제들을 녹여볼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작가님께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가볍거나 무거운 무엇이든, 지나치기 쉬운 삶의 부분을 확대하고, 크롭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구성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길게 늘여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느껴요.


꼭 정답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상을 더 깊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자 작가로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작업하며 느끼고 고민했던 순간들, 그리고 즐거웠던 부분들이 여러분께도 작은 즐거움이나 새로운 시선으로 전해졌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작업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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