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불안정함에서 발견한 질서

tacet artist: Yang Hyunmo 양현모

안녕하세요 작가님, 짧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가 양현모입니다. 세상과 인간 존재의 불안정함, 변화, 그리고 추상성을 회화를 통해 탐구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회화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요즘 세상은 자극적이고 빠른 것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정보가 순식간에 소비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더 강한 자극과 즉각적인 반응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흐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나를 좀 더 천천히 관찰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화라는 매체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이 지금 하고 계신 작업이 탄생하게 된 첫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갓 태어난 아들을 위한 드로잉에서 시작했어요. 초점책이라고 해서, 아기들이 처음 보는 강렬한 대비의 그림책이 있거든요. 그 단순한 도형과 색채에 매료되면서, 저만의 방식으로 초점책을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추상 작업으로 확장되었고, 지금의 작업 스타일로 이어지게 되었죠.

꼬마손의 초점책 ©그린키즈 편집부
꼬마손의 초점책 ©그린키즈 편집부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나요?


저는 보통 아이패드로 먼저 드로잉을 해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거실 책상에서 그날그날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감정을 추상적인 형태로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저는 이 작업을 ‘그날의 흔들림’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드로잉 일기처럼 남기고, 이후 다시 회화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작품마다 다 달라요. 어떤 건 오래 걸리고, 어떤 건 빠르게 끝나기도 해요.


보통 완성 직전에는 한동안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요. 그러다 보면 문득 다음 방향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양현모 작가의 양평군립미술관 전시 전경 ©Yang Hyunmo
양현모 작가의 양평군립미술관 전시 전경 ©Yang Hyunmo

작업 속 수직과 수평의 질서, 도시적 요소는 어떻게 반영되나요?


저는 작품에서 수직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꼭 도시의 구조를 표상하려는 건 아니에요.


살다 보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 성별, 나이 같은 것들로 한정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를 점점 유한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사실 훨씬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존재라고 느꼈죠.


그래서 수직과 수평으로 계획된 도시 구조도 저를 옥죄는 질서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화면 안에서 이 선들은 단순한 경계를 넘어 깊이를 만들고, 빛이 되고, 열린 기호로 남아 있는 요소가 됩니다.

도시, 불꽃, 그리고 양현모 작가의 [Flexible Forms 10.06]
도시, 불꽃, 그리고 양현모 작가의 [Flexible Forms 10.06]

색과 형태는 작가님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그림이 저를 무한하게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저는 그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을 뿐이죠.


그리고 색과 형태는 저라는 흐릿하고 불안정한 존재를 포착할 수 있는 무한한 언어라고 믿어요. 작업을 통해 저 자신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제게는 가장 중요해요.

최근 작업 중에서 소개해주실 작업이 있나요?


Flexible Form 시리즈를 소개드리고 싶어요. 매일 드로잉한 이미지들을 작은 회화로 풀어낸 연작이에요.


저는 창밖 풍경을 보며 드로잉을 하는데, 창틀과 창살 너머 보이는 대기의 흐름, 태양의 이동, 어둠이 몰려오고 다시 도시가 빛나는 모습을 관찰하며 작업했어요.


이처럼 변하는 풍경처럼, 제 내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치 우리가 우연히 마주친 근사한 하늘을 보며 감탄하듯,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특별한 순간들이 흐르고 있음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Flexible Forms 08.25, 2024, Oil on canvas, 53 x 53cm ©Yang Hyunmo
Flexible Forms 08.25, 2024, Oil on canvas, 53 x 53cm ©Yang Hyunmo
Flexible Forms 10.18, 2024, Oil on canvas, 53 x 53cm ©Yang Hyunmo
Flexible Forms 10.18, 2024, Oil on canvas, 53 x 53cm ©Yang Hyunmo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가 있나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흐릿함’은 제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9년 첫 개인전에서는 어둠에 관심을 두며, 저명도로 그려진 회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2021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이미지를 지우고 빈 화면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2023년에는 대칭을 그리면서 그 형태를 일부러 흐릿하게 표현하며 불안정함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저 자신을 흐릿하고 불확실하며 비고정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이러한 흐릿함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작업을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쉽게도 그런 명확한 방법은 없어요. 우리는 보통 뚜렷한 것을 선호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드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불확실하거나 애매한 것들을 제외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흐릿함, 불확실함, 불안정함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안정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겠지요.


제가 추상을 다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추상은 열린 언어로서 관람자에게 스스로의 공간을 남겨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 그림을 감상하는 팁을 하나 드리자면, 오늘의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제 화면 속에서 한번 찾아보는 것을 제안합니다.



평소 작업을 하면서 영감을 받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


저는 움직이는 것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요. 예를 들면, 하늘이 흐르고, 물이 일렁이고, 불이 타오르고, 연기가 퍼지고, 도시가 움직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것들은 계속해서 형태가 변하고, 순간마다 다르게 존재하잖아요. 저는 그런 변화하는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흐름과 질서를 찾아내고, 화면 안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양현모 작가의 양평군립미술관 전시 전경 ©Yang Hyunmo
양현모 작가의 양평군립미술관 전시 전경 ©Yang Hyunmo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이나 환경이 있을까요?


너무 많은 것들에서 영향을 받아서 하나를 딱 집어 말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그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그 평범함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업실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육아를 하면서 작업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3분 거리로 작업실을 옮겼죠. 덕분에 낮뿐만 아니라 밤 10시 이후에도 작업실에 나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어요.


작업실은 넓고 쾌적한 공간이에요.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건물 맨 꼭대기 층에 개를 무척 사랑하는 집주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사신다는 것이에요. 작년 가을에는 감나무에서 직접 따신 감을 나눠주시기도 했어요. 이런 따뜻한 환경 덕분에 작업실이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조금 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곳이 된 것 같아요

주로 어떤 환경에서 어느정도의 시간동안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저는 일주일에 3일은 강사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작업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어요.

보통 아기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전 10시쯤 작업실에 출근해요. 그리고 오후 4시~4시 반까지 집중해서 작업한 뒤, 다시 아이를 데려와 가족과 저녁을 보내는 시간을 갖죠.


하지만 하루 일과가 거기서 끝나진 않아요. 밤 10시 이후 다시 작업실에 나와 작업을 이어가거나, 못 가는 날에는 집에서 아이패드로 드로잉을 하며 작업 흐름을 유지하려고 해요.


시간적으로 여유롭진 않지만, 이렇게 일상과 작업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경험이요. 전시는 결국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작업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시간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회화라는 매체를 다루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느껴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설치하고 옮기고 정리하는 과정, 포스터 디자인, 평론, 홍보, 초대, 오프닝 등 수많은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가에게 이보다 더 근사한 시간이 또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삶을 온전히 배우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들이 쌓이는 것이 전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2023년 12월에 진행된 양현모 작가의 개인전 Burning Symmetry의 전시 전경 사진 ©Yang Hyunmo
2023년 12월에 진행된 양현모 작가의 개인전 Burning Symmetry의 전시 전경 사진 ©Yang Hyunmo

요즘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주제가 있을까요?


요즘 법치와 죄에 대한 개념에 관심이 많아요.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거의 위인들처럼 헌신적인 사람이 지금 시대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에요.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 그런 인물이 탄생할 수 있을지, 아니면 우리가 그럴 기회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업 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워져요.

아직 아기가 어려서 엄마, 아빠와의 교감이 중요한 시기인데, 저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요. 작업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한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작가님께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저를 무한하게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있으신가요?


훗날에 모란디 그리고 뭉크와 함께 전시를 하고 싶어요. 현재는 뭉크를 더 선호합니다.

Despair, 1892, Edvard Munch
Despair, 1892, Edvard Munch
Flexible Forms 12.03, 2024, Oil on canvas, 31.8 x 31.8 ©Yang Hyunmo
Flexible Forms 12.03, 2024, Oil on canvas, 31.8 x 31.8 ©Yang Hyunmo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살면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은 각자 자기만의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몇몇은 그 삶이 벅차 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의연하게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흔들림이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정한 순간을 겪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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