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색으로 공간을

조각할 수 있다면

tacet artist: Jeong Yeonjae 정연재

안녕하세요 작가님, 짧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연재입니다. 주로 추상 회화를 그립니다.



회화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 레고 만들기를 좋아했죠. 그러다 학창 시절에 취미로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디자인과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쭉 이어져 왔네요.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전체와 개인, 확실과 불확실, 어두움과 밝음처럼 서로 대비되는 것들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로가 공존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처음에 시도했던 작업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첫 시도는 앞서 말씀드린 군 입대 전에 그렸던 그림들인데, 관리를 소홀히 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신, 학부 시절에 처음으로 제작한 회화 시리즈 작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 작업에서 그라데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어요.


당시 평면 캔버스 위에 ‘설득력 있는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던 시리즈 작업이 바로 Shifting Color입니다. 이 작업은 색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공간감과 깊이를 탐구했던 작업입니다. 이 작업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작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Shifting Color #8 (2018), Acrylic on canvas, 142x137 cm ©Yeonjae Jeong
Shifting Color #8 (2018), Acrylic on canvas, 142x137 cm ©Yeonjae Jeong
Shifting Color #7 (2018), Acrylic on canvas, 132x142 cm ©Yeonjae Jeong
Shifting Color #7 (2018), Acrylic on canvas, 132x142 cm ©Yeonjae Jeong
Shifting Color #9 (2018), Acrylic on canvas, 180x180 cm ©Yeonjae Jeong
Shifting Color #9 (2018), Acrylic on canvas, 180x180 cm ©Yeonjae Jeong

한 작업을 완성하시기 까지의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작업은 가벼운 스케치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것을 현실 스케일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저는 큰 그림과 작은 그림 모두 알맞은 스케일 속에 담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측정과 비율을 세심하게 조정합니다.


작업의 단계마다 계획이 세워져 있지만, 진행 과정에서는 즉흥적인 결정들과 씨름하며 그 계획을 조정해 나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흐름과 선택들이 더해져 작업이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최근하신 작업중에 소개해주실 작업이 있으신가요?


초기작과는 다르게 근래에는 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색을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본 작업은 1차 종이 테스트와 2차 캔버스 테스트를 거친 뒤에 시작됩니다. 1차 테스트에서는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2차 테스트에서는 컬러와 구도까지 작업하기 때문에, 본 작업에 대한 확신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마음에 들어 지속적으로 이어지다 보니, 작업들이 쌓이며 Minimal Space 시리즈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컬러 테스트 종이 ©Yeonjae Jeong
컬러 테스트 종이 ©Yeonjae Jeong

3호 캔버스에 제작한 또 다른 시리즈는 2023년에 제작한 Edge 시리즈입니다. 이 작업은 평면 캔버스에 구조적인 변형을 가해, 곡선과 그라데이션을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방식에 흥미를 느껴 리서치를 하던 중, 쿠바 여성 작가인 Zilia Sanchez Dominguez의 작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흡사한 방식으로 작업한 그녀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Edge 03 (2023), Acrylic on canvas, 27x24x4 cm ©Yeonjae Jeong
Edge 03 (2023), Acrylic on canvas, 27x24x4 cm ©Yeonjae Jeong
Erotic Topology (1970), Zilia Sanchez Dominguez
Erotic Topology (1970), Zilia Sanchez Dominguez

작가님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개인전/ 단체전이 있으신가요? 


모든 전시가 특별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23년 유영공간에서 진행했던 <Around the edge: 틈> 전시입니다. 이 전시는 디렉터님들과 6개월 동안 미팅하며 작업을 디벨롭해 나간 과정 덕분에 더욱 뜻깊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고,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와 작업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통일성입니다. 맥시멀리스트 성향인 저는 늘 무언가를 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는 덜어내는 법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거라 생각하기에 늘 대립하곤 합니다.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Yeonjae Jeong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가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세계관인 이중성에 대한 관심으로 지속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을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 작업은 제가 흥미를 느끼는 다양한 지점에 대한 견해이자 질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기보다, 스스로에게 되묻는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을 존중하며, 관람자들이 작업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다른 작가의 작업을 볼 때 즐겨 하는 방식 중 하나는 작업 과정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회화는 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작업에 남겨진 제작자의 흔적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때로는 제작자의 인터뷰나 글을 참고하며, 흔적들을 쫓아가다 보면 닮은 점이나 예상치 못한 의외의 점들을 발견하는 흥미로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가님이 평소에 작업을 하시면서 영감을 받는 것은 어떤게 있나요?


주로 제 일상 반경 내에서 느끼는 것을 작업으로 풀어내거나, 관심사를 조사하다 발견되는 다양한 경로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영화, 책, 여행, 대화, 날씨 등 다양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영향을 끼친 인물이나 사물, 환경이 있을까요?


독일 바우하우스 Bauhaus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바우하우스 정신을 이어받은 많은 인물들의 작업을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거기에 끌림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미국 회화 작가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는 대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로, 그의 1960년대 aluminum 시리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이 작업에서 스텔라는 네모난 캔버스를 일부 도려내고 그 둘레를 따라 선을 반복하며, 이를 두고 ‘선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표현을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한 변형으로 시각적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그의 방식이, 동시대 산업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의 디자인과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닮은 지점을 발견하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연결은 작업의 영감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들입니다.

Sturtevant, Stella Averroes, 1989/1990, Aluminium oil paint on canvas, 187.5 x 181 cm (73.82 x 71.26 in) (C)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 thaddeus Ropac
Sturtevant, Stella Averroes, 1989/1990, Aluminium oil paint on canvas, 187.5 x 181 cm (73.82 x 71.26 in) (C)Around the edge: 틈 전시 전경 © thaddeus Ropac
Braun T3 pocket radio, 1958 ©Braun
Braun T3 pocket radio, 1958 ©Braun

현재 작업하시는 작업실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약수역 근처에 있는 상가 건물입니다. 다른 작업자분들과 칸을 나눠 사용하고 있는 공유 작업실 형태이고요. 작업실의 가장 큰 장점은 위치라고 생각해요. 서울 어디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는 위치 덕분에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나요? 재료를 사용하시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스타일의 특성상 테이프를 많이 활용하게 되는데, 물감이 빠르게 말라야 작업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건조가 빠른 아크릴 물감을 회화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나 도구가 있으실까요?


작업할 때 효율성을 따지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물감, 붓, 재료를 담아 여기저기 옮기는 트롤리를 구매한 것에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환경에서 어느정도의 시간동안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작업실에 있지 않으면 작업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라는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페럴 윌리엄스 pharrel williams가 팟캐스트 중 한 얘기로 “창의성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 역량이 아니라 우주적인 존재이다. 창의성은 때에 따라 나를 스쳐 지나가는 기운일 뿐.” 라고 말한 것에 큰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업실에서 회사처럼 꾸준한 근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연재 작가의 트롤리
정연재 작가의 트롤리

요즘 관심 있으신 개인적, 사회적 주제가 있으신가요?


제 스스로 노력하는 부분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입니다.



작업활동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작업 외에는 영화를 즐겨보고, 운동을 하고, 전시를 찾아가는 정도입니다.



앞으로 어떤 주제를 탐구하고 싶으신가요?


최근 유럽 여행으로 독일 데자우와 바이마르를 방문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제 관심사인 바우하우스를 직접 보기 위해서인데요. 바우하우스 하면 떠오르는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을 기대하고 갔지만 보다 깊은 세계관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사물의 관계와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의 시도로 무대미술, 음악, 그리고 안무의 영역도 융합하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공간을 파악하는 방식도 우리 신체에 비례해 바라보고 습득한다는 내용이었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지만 그 논리가 생각보다 다양한 영역까지 뻗어져 있던 겁니다. 사물과 인간의 관계, 비례, 그리고 비율이 흥미롭게 다가와 관련된 내용을 탐구하려 합니다.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있으신가요?


나중에 나이가 들때까지 작업을 지속해 회고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작가님께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작업을 제 관심사와 개인적 충족을 위해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술을 한다라는 생각보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에 더 가깝게 수행합니다. 반면 다양한 예술 장르를 소비하는 입장으로는 배움의 영역이기도 하지요. 영화, 건축, 책 등과 같은 익숙한 예술도 있지만 현대에는 보다 포괄적으로 개인이나 브랜드가 수행하는 행보가 예술적으로 보이는 것을 보면 더욱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도를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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